봄의 한 가운데 바람은 가늘고 꽃은 화려하다.
문학기행을 떠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다.
버스는 35명의 문우들을 태우고 한시간 후
'객주문학관'에 도착했다.
여기는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에 있는 객주 김주영
선생의 문학관이다. 우리 민족의 한서림 '객주'는
이곳 청송 파천에서 태어난 김주영 작가의 대하소설이다.
전 10권으로 완성된 소설은 현대사에 길이 남을 명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업적을 후대로 전하기 위해 청송군이 폐교를
개조하여 '객주문학관'으로 탈바꿈 시겼다.
고향 마을이 지척임에도 이곳은 처음이니
고향사랑이 참으로 부끄럽고 나의 문학지식이
허잡하여 대작가를 만나기가 부끄러웠다.
문학관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객주와 주모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모습이지만 내 어릴적 어렴풋한 기억에도
모따리 장수가 우리집에서 하룻밤 머물러 가기도 했다. 숙식비는 다름아닌 양말 한 컬레나 고무신 같은 것이었다. 갓난 아기 등에업고 일하는 남편의 밥상을 이고가는 아낙의 모습이 바로 내 기억의 어머니 였다.
문학관 전시실에는 김주영 선생의 일생의 흔적들이 전시되어있다. 80평생 글쟁이로 살아오신 작가의 손때 묻은 필기구들이 대작의 탄생을 기억하고 있다.
내 어릴적 중고등학교때는 잉크 묻혀 사용하는 잉크펜의 기억이 새롭다. 선생의 잉크펜은 어딘가 멋이 있고 고급지다.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지역의 다니면서 실증하는 직업이라 카메라는 필수품이였을 것이다. 오래된 기종에서 부터 현재의 기종까지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내게는 특별한 시선을 주는 공간이다.
전시관에는 북한 방문으로 평양과 금강산의 사진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었다.
유럽 유명 박물관에 와있는 착각을 준다. 어느 대 귀족의 잉크펜 같아서 시대의 진한 향취가 느껴진다.
선생이 어느 장터에서 객주를 만나 막걸리 한 사발로 실증 하고 있는 장면을 문학관에서 만날 수 있다. 수년에 걸쳐 경북일원의 장터를 수십번 찾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작가는 새롭게 정립해 갔을 것이다.
문학에 취해 잠에 취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청년 김주영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올해로 83세, 김주영 선생의 주름진 얼굴에서 한 생의 거룩함이 보여진다. 소설속의 천봉삼이 정의로운 보부상의 삶으로 한생을 누렸다면 현세의 김주영도 천봉삼에 못지않은 외길의 확고함으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희끗한 머리털이 자꾸만 자리를 벗어남은 세월의 무정함이다. 그의 평온하고 인자한 자태 옆에 감히 허약한 육신을 기대여 본다. 싱긋이 웃어주는 따뜻함이 그져 감사하고 영광스러울 뿐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문학관에 사람 발길이 끊긴지 어연 3년째, 오랜만에 군중(?)이 선생의 향취로 찾아들었으니 그 반가움을 어찌다 감당하리, 사람의 발걸음이 그리웠던가! 몰려 온 문학 후배들이 반가워 처음으로 선생의 집필실을 개방하고
문천(문지방) 넘이를 허락하였다.
선생의 고백이 참으로 가슴을 울린다. '어미니 빼고 세상만사 거짖이다' 라고 말하는 그의 독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내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들 때문에 내 삶의 고통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이름하에 허세를 부리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끄럽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선생은 결코 작지않은 6척의 거구임에도 내면의 섬세함은 여성의 부드러움에 뒤지지 않는다. 깨알같은 작은 글씨에서 작가의 내명을 엿볼 수 있다. 천지를 두려움 없이 다니신 담대한 열정과 또렷한 작은 글씨가 주는 느낌이 도무지 어룰이지 않는다. ㅎㅎㅎ
선생의 집필실이다. 처음으로 개방하였다 하니 영광이고 감사이다. 내 어찌 대작가의 집필실에 발을 놓을 수 있을랴.
청송에는 '객주문학관'에 버금가는 미술관이 있다. 청송에서 영해로 넘어가는 길목에 '신촌약수터'가 있다. 지금은 고속도가 개통되어서 '동청송나들목'을 나오면 바로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야송미술관'이 있다. 청송 파천 출생인 '야송 이원좌'화백의 평생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 역시 폐교를 청송군에서 개조하여 '군립야송미술관'을 탄생 시켰다.
야송 선생은 동양화가 이므로 이곳에는 선생의 일생의 동양화가 가득하다. 대부분 지역의 명산인 주왕산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1층과 2층에는 소,중,대시실로 구분되어 그림의 크기에 따라 전시되어 있어서 전시실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특별하다.
특히 '청량대운도전시관'은 별도로 건물에서 관람할 수 있는데 그림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여 '청운대운도'만을 전시하기 위해 별도의 건물을 건축하여 그림을 전시하였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 장대함에 기가 죽는다. 한 인간의 위대한 의지와 예술혼에 밀려오는 감동을 어찌하지 못해 그져 감탄만 할뿐이다. 길이가 46M, 높이가 6.7M 이니 감히 상상이 되겠는가?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그 감동을 느끼지 못하리.....
고항이 지척임에 이곳이 처음이라 부끄럽고 죄송하다. 내 고향의 예술혼이 자랑스럽다. '청량대운도' 앞에 내 얼굴 놓기가 민망하다.
파천면에 '송소고택'이 있다. 조선 4대 세종대왕의 비 '소현왕후'가 청송심씨이다. 이곳은 소현황후의 후손들이 터잡고 살았던 99칸의 대 저택이다. 문학기행을 함께 한 문우들과 고택의 마루턱에 앉았다. 늘 사진을 찍는 쪽이었는데 찍히는 쪽에서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다. 감회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