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대릉원과 월지

쌍둥이가족 2021. 8. 29. 16:10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경주로의 발걸음이 적지 않게 이루어졌지만 매번 좋은 사진을

담으려는 의지와 행동이었지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늣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으려는 8월의 마지막 주말에 괜시리 문화유적에 대한 탐방을

하고 싶다는 어울리지 않은 고상함이 발동하였다.

애초에 사진을 좋아했던 것은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우리강산을 사진으로 담아보고자 했지만 어느때 부터 여행보다는 사진이 우선이 되었으니 주객이 전도되고 있었다. 어쩌면 초심의 근본으로 경주로 발길하는 8월의 마지막 주말이 되었다. 어제까지 오락가락 하던 하늘비는 인사도 없이 물러가고 청명한 하늘의 비늘구름은 여행객의 시선에서 웃음을 머물게 하고 있다.

 오늘이 2021년 8월 28일(토)이다. 지역(칠곡지구)에 살고있는 고향동무(건수,재석)와 오랜만에 추어탕으로 점심을 치르고 오후 3시 쯤에 경주로 출발했다. 대릉원을 관람하고 7시경 일몰에 첨성대 해바라기, 그리고 일몰 후 동궁월지의 매직아워 야경이 오늘의 일정이니 오후 3시의 출발도 늦지는 않았다.

대구에서 경주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이면 여유있게 도착하는 거리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당시에 왕복 4차선 아스팔트 포장으로 중앙분리대는 단정한 소나무 화단으로 멋있게 만들어 졌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차량의 통행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왕복6차선에 콘크리트 포장과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로 변화되었다. 

 고속도로를 혼자 운전하면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렇게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내가 기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차량의 기능이 매우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애마는 산타페2.0D 2019년 산이지만 스마트컨트롤 기능이 있어서

속도와 차선과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하면서 운행되고 있다. 핸들에 손을 놓고 카메라를 잡고 셧터를 눌려도

전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달에 인간의 편리함은 끝을 모르고 발전하지만 환경파괴로 인한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아서 지금 인류는 코로라19 바이러스에 움추리고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평균시속 100Km로 달리면 50분 후에 경주 톨케이트에 도착한다.

신라천년의 문화가 숨쉬고 있는 고도의 도시답게 경주의 관문은 한옥기와로 되어있어서 여기가 경주임을 실감케 한다.

차는 하이페스통로 순식간에 톨게이트를 통과하지만 빠르고 편리함 보다는 여행객에는 정감이 느껴지는 아날로그가

더 좋을 것 같아서 약간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예전같으면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계산하면서 "경주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해주는 친절한 계산원도 있을텐데

지금은 "띵똥 할인요금 2,400원 결재되었습니다"라고 하는 전자음만 들리고 있으니 약간은 씁쓸함이 느껴진다.

대릉원에 도착하니 엄청난 차들로 인하여 주차장은 만차로 닫겨 있고 차는 꼼짝없이 직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약간의 이동에서 다행이 장애인 코너가 있어서 재빨리 주차를 하고 대릉원에 입장을 했다.

장애인은 무료입장이라 표를 사지않고 곧바로 입장을 하였다.

코로나 방역에 따라 체온체트와 방문기록을 하고 대릉원 문턱을 넘어서면 시야에 들어오는 첫번째 경관은 하늘 높이 

솟아있는 소나무 숲이다. 숲길 저 너머에 엄청난 높이의 대릉이 보이지만 늣여름의 오후 햇살은 뜨거움이 식지 않은지라

숲길의 시원함을 빨리 벗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얼마전 유흥준 교수의 '나의문화답사기' 금강산편을 볼때 우리나라 소나무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었는데 대표적인

우리나라 소나무는 금강산의 금강송이지만 나무의 줄기가 꼬이고 굽어있는 키작은 소나무 안강송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서 우리동네 청송에 있는 그 나무가 안강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강에 많이 있다고 해서 안강송 이라고 하는데 안강에는 키작은 소나무만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신라시대에

경주 궁궐에서 키큰 소나무는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모조리 벌목을 하고 키작은 소나무만 남겨 두었기 때문에 지금의

안강송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고 하니 하늘높이 치솟은 경주의 소나무는 신라시대에 옮겨진 후손들인가 싶어서

왠지 안강송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소나무는 아지자기한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내고향 뒷산의

안강송이 제일 멋있다.

숲길을 걷다보면 안내판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천마총과 미추왕릉' 오른쪽으로 곧장 가면 'SNS포토죤' 이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는데 유적지에 안내판 피고 포토죤 안내판이 있을 정도면 얼마나 유명한가 싶어서 그쪽으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갈 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충 위치는 알게되었으니 왼쪽 샛길로 들어서 미추왕릉으로 먼저 들러보기로 하였다. 이곳 미추왕릉은 현재 발굴이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이고 정확히 미추왕릉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추측하고 있다는 안내판을 읽을 수 있었다.

왕릉의 제단뒤에 일반 릉에서는 보지못했던 의자같은 석재가 있어서 미추왕이 앉아 있는 자리인가 싶어서 참으로 신기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포토죤이다. 양쪽의 솟아있는 대릉과 중앙에 위치한 황남대총과 그 앞에 자리잡은 목련 두 그루가

그렇게도 아름다운 구도를 잡아주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SNS에서 유명세를 타고서 경주에 여행오는 선남선녀는

반드시 인증샷을 남기야 하는 곳일란다. 이 포인트는 일물시간에 붉은 노을이 질때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곳이다. 또한 매직아워 타임에 나무에 조명이 비춰지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멋진 야경의 담을 수 있고, 3월의 봄이

오면 목련이 조명에 비치는 전국의 수많은 진사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포인트에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선남선녀가 기백명을 족히 넘어 보였드니 이곳이 핫플레이스 임은 분명하다. 나는 저 대열에 끼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맺히는 땀을 식히기 위해 그늘에서 잠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대릉원에 잠들어 있는 왕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무슨 말씀을 내릴 지 궁금했다.

고귀한 품격들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 소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역정을 내실지? 아니면 어린아이 손잡고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부모의 마음이나 사랑하는 연인들의 깜찍발랄한 순수한 애정이나 모두가 내 후손들의 행복한 모습들이니

흐믓하고 만족스런 눈빛으로 미소짖고 계실지? 아마도 후자의 모습으로 대견해 하고 계실것이라 생각되니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한없이 행복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짙은 녹색의 푸르름을 가득 품은 대릉원에 감나무가 심겨져 있다. 나무의 규모로 보아서는 수령이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감나무를 심어 놓았을까 싶어서 약간은 궁금했지만 그 연유는 알길이 없다. 저절로 자생한 것은 아니지 싶은데

감나무가 있어서 정겨움이 더 깊게 느껴지는것은 다행이다. 감나무에 대한 궁금증이 저녁쯤에 풀렸다. 대릉원의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이 되었는데 그 당시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니 지금의 대릉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의 대릉원은 담장으로 정돈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담장도 없었지만 민가가 대릉과 함께 있었다. 천마총은 어느 민가의 뒷뜰과 붙어져서 밑부분의 흙들이 무너져 있었고, 황남대총(당시 95호분)과 미추왕릉 사이에는 적지않은 민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의 감나무는 어느 민가의 가정집 과실이었던 것이다. 아들의 손은 잡고 걸어가는 부자는 그 옛날 마을길을 걸어가는 부자의 환생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1970년대초 천마총이 발굴되기전 대릉원의 모습이다. 동그라미 쳐진 봉분이 천마총이고 오른쪽의 쌍동이 봉분이 황남대총이다. 대릉 주변에 수많은 민가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어릴쩍 뒷산의 허씨 묘지에서 보리집단으로 설매를 타고 놀았던 기억으로 상상해 보면 이곳 대릉원에서도 동네 꼬마들이 능에 올라가서 설매를 타고 놀았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군사정부가 시작된지 10년정도가 지나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우리는 문화재 발굴에 힘을 솟을 여유가 없었다. 지금의 대릉원 모습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발전적 저력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경주는 신라 천년이 고도인지라 어느 곳이나 문화재가 묻혀 있다고 한다. 이곳은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주춧돌을 모아

두었다고 한다. 건물을 건축하면서 발견된 수많은 돌들도 모두 옛것들이고 문화재 인지라 함부로 버릴 수 없고, 그렇다고

건축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이곳에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황남대총이다.

이곳은 두개의 능이 하나로 합쳐진 대릉이다. 남쪽이 남자의 능이고 북쪽이 여자의 능이였다고 한다. 고신라시대의 왕족의 능이라고 보면 왕과 왕비의 무덤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 거대한 대릉을 발굴하기 위해서 옆에 있는 작은 능을 연습삼아 발굴 한 것이 천마총이다. 천마총을 발굴하면서 그곳에서 왕관이 나올 줄 몰랐다고 한다. 때문에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이나 능의 주인을 현재까지 알지 못하고 있다.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발굴사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당시의 발굴팀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대부분 생존해서 학계의 원로로 있으니 그들의 생생한 증언들은 당시의 흥분을 그대로 전해준다. 발굴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대한 관심속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문화계 인사들은 거대한 무덤을 발굴하는데 주저하고 있었지만 절대권력자의 관심을 이겨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가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드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출토된 문화재가 무려 4만점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와 화려함이 놀랍다.

지금의 천마총의 모습은 일반 관람을 위해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천마총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나무껍질에 그려진 천마도가 발굴되어서 천마총이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발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각종보석으로 치장된 죽음을 나무관에 넣고 돌로덥고 다시 큰 나무집을 덥고 다시 돌무덤을 덮고 그 위해 흙으로 덮었다고 한다. 그 철저한 밀폐덕분에 2천년이 지나도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조상의 지혜가 대단하다. 당시에 어쩌면 수천년 뒤에 후손들이 발굴할 것을 예상하고 이렇게 하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무덤안에는 몸에 치장하는 장구들은 치장을 한 상태로, 생전에 사용했던 집기들이나 소장품들은 별도로 모아서 묻었다,

나무관을 작은 돌들로 촘촘히 덮어서 완벽히 밀폐했던 것이 정말 대단한 지혜들이다.  여기는 천마총의 발굴당시의 보존

상태이지만 황남대총은 발굴 후 유물들은 경주박물관에 보존하고 무덤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켰지만 내부의 무덤형식을 천마총과 마찬 가지로 돌무덤이라과 한다.

천마총의 실제의 모습을 형상화 시켜놓고 보여주고 있다. 관위에 자갈을 덮고, 그 위헤 나무집을 만들고 그 위에 엄청난 돌들로 완벽히 덮은다음 토사로 덮어서 거대한 무덤을 완성하였다.

천마총을 관람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당시대의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탐을 하면서 문화재 발굴에 인생을 바쳤던 고고학자들의 수고와 정신력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당시의 발굴 사진을 보면 찬란한 황금빛 왕관과 살아 움직이는 정교한 천마도를 처음으로 영접하고 직접 수습 할 때의 흥분됨과 손떨림 그리고 가슴벅참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가을을 재촉하는 산들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사이로 내리는 햇살은 여름의 맛을 잊지 않게 하는 8월말의 오후였으니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혼자만의 여행이 좋은 것은 발걸음의 늣고 빠름을 내 마음데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발걸음을 보면서 선조들의 찬란한 문화를 관람하는 후손들의 마음 가짐을 생각 해 본다.

 삼각대를 앞에 놓고 타이머 셧에 셀프촬영으로 나름의 즐거움에 취해 본다. 시꺼면 얼굴은 본디의 태생이라 낮설지 않지만 백미로 덮어진 머리가락은 낮설기만 하다. 투석을 하면서 살이 빠진 내 모습을 사진으로 보기가 싫어 자화상은 찍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리 보기 싫은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울리지 않게 문화답사를 한답시고 홀로 여행을 떠났으니 나름의 낭만과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는 만족 할만하다고 자위자찬을 한다. 

첨성대와 해바라기를 뒤로하고 저녁 해가 노을 되어 떠나려 한다. 선남선녀들의 활기찬 발걸음과 발랄하고 상쾌한 표정들은 어스름한 여름날 저녁이 아쉬워 분주히 카메라 셧타를 누른다. 나도 이 순간의 해바라기를 담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시도록 청명한 하늘에 여유롭게 유영하는 흰 구름이 최고의 배경을 연출 하고 있었으니 사진 실력이 부족함이 안타까울뿐 최고의 저녁 풍경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음 코스가 월지의 야경이니 빨리 움직여야 한다. 

동궁 월지에 도착하니 일몰 후 1 시간이 지난 8 시가 되었다. 첨성대에서 월지주자장 까지는 5분의 거리도 되지 않았지만 너무도 많은 차량들 덕분(?)에 1 시간정도 소요되었으니 매직아워 타임을 놓지고 말았다. 월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화려한 야경에 취해 움직임이 없으니 내가 들어 갈 틈이 없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한 컷을 하였지만 시간을 놓친뒤라 에머랄드빛 푸른 하늘의 매직아워는 맛보지 못했다.

 동궁월지는 통일신라시대 세자가 살던 곳이라고 햇서 동궁이라 하고 월지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의 이름이 월지라 해서 동궁월지라고 한다. 이전에는 안압지(雁鴨池)라고 하였는데, 조선초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었다 하여 기러기안과 오리압자를 써서 안압지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경주 여행에서 야간 관람의 백미이다. 경주는 KTX가 연결되면서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고풍스러움이 교동 한옥촌에 있고, 각종 먹거리의 맛집들이 향리단길에 즐비하고, 발걸음으로 닿는

대릉원과 첨성대 그리고 동궁월지가 있으미 여행과 문화답사와 먹거리가 함께 이루어 질 수 있는 곳이다. 렌트를 하거나 한적한 버스 여행을 즐기면서 불국사와 석굴암의 찬란함에 감탄 할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주만의 특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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