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청암사

쌍둥이가족 2021. 11. 7. 17:25

                                                                       청암사 

 

                                                                                                                            정종수

 

 

 

 

추경(秋景)은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여름의 이끼 폭포가 태고의 신비를 품고 있다면 단풍에 어우러진 가을 폭포는 아름다움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멀지 않는 거리여서 평소같이 새벽 출발은 하지 않았다. 왜관을 지나 성주읍 외곽도로를 달리는 4차선의 시원함은 상쾌한 아침을 선물해 주었다. 성주호를 지나면 무흘구곡의 청량함이 코끝에 닿는다. 만산연홍이 계곡을 감아 도니 운전하는 시선이 바삐 움직였다.

  청암사는 수도산 줄기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대구에서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휴일에도 고즈넉함을 잃지 않는 곳이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이곳은 조선 숙종의 왕비 인현왕후가 복위되기 전 3년을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청암사 일주문

  차에서 내려 왼쪽 계곡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불령산 청암사’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치솟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새소리 멀어진 곳에 낙엽의 부딪힘이 발아래서 사각거리고, 녹색을 떨쳐낸 참나무잎이 겨울을 준비하러 땅으로 내려앉는다. 사찰의 경건함에 앞서 숲속 청량함에 가쁜 숨을 내려놓는다. 나무 의자에 잠시 앉아 하늘을 본다. 한 잎 떨어지는 낙엽에 한 숨을 토해내니 명치가 시원해 온다.

 

 

적은 수량과 말라버린 단풍의 이끼폭포

  청암사는 바위가 푸르다 하여 청암사라 한다. 청암사를 알게 된 것은 이끼 폭포 때문이었다. 단풍에 어울리진 이끼 폭포를 놓치기 싫어 10월 말에 들렀을 때는 푸른빛을 담고 있었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건만 단풍은 말라가고 있었다. 늦은 발걸음을 아쉬워한들 소용이 없다.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발길이 닿지않은 청암사 계곡

  청암사가 깊은 가을옷을 입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몸놀림이 숨차다.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 자연의 순결함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개울을 켜켜이 덮고 있는 낙엽 사이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의 속삭임이 가슴에 박힌다.

 

‘비움에서 기쁨을 얻으라’.

 

 

 

 대웅전 앞마당

  가을의 정취가 가득 내린 청암사의 11월 7일. 대웅전이 닫힌 문을 활짝 열고 만물을 품어낸다. 오늘은 ‘인현왕후 복위식 재현’ 행사가 있는 날이란다. 아침 일찍 분주히 움직이던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은 이유가 있었다. 인현왕후는 1689년 숙종 15년 기사환국의 여파로 폐위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기까지 3년 동안 외가와 가까운 이곳 청암사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청암사 극락전에 머물면서 보광전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장희빈의 온갖 계략으로 고초를 겪고 있지만, 숙종의 안락장수와 백성들의 평안을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대웅전 앞 

 

  어쩜! 이리도 조화로울 수 있을까 싶다. 땅에 내려앉은 가을 잎과 나무에 매달린 가을 잎이 화려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석탑을 감싸고 있다. 마음이 맑아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몸이 겸손해지는 것은 부처님의 자비가 가까이 있음이리라. 붓다의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층 석탑을 품고 있는 청암사의 기품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하다.

 

 

청암사 개울

  청암(靑巖)을 덮고 있는 겹겹의 낙엽들이 겨울을 준비했으니 설빙의 한파인들 두렵지 않다. 비움으로써 채워진다는 삶의 진리를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이 가볍고 따듯하지 않겠는가.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  청암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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