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떠난다.
숨박히게 담박질 하는 도시를 떠나서, 칠흑의 어둠을 즐기며 정동진을 향해
기적울리는 자정열차에 몸은 기댄다.
무정히 흘러가는 세월의 무게앞에 거부할 수 없었던 삶의 여정에게 잠시의 휴식을
주기위함이다.
맞은편에서 책을 읽는 큰아들, 창넘어 펼쳐지는 어둠속의 작은 불빛을 찾는
작은아들, 지금은 이 모두가 행복이기만 하다.
아비와 함께 할 수 없는 딸이 없음이 허전하고 쓸쓸함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열차는 금오강 철교를 넘어서면서 대구를 벗어난다.
아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밤여행이 훗날 아비를 추억하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지기를 희망한다.
부족함 많은 학창시절이였지만,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을
기억해 준다면 이 여행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를 찾았음이다.
23시56분에 동대구역을 떠났던 열차가 0시50분에 김천역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경부선을 타고 상행했지만, 여기서부터는 강릉길에 닿아있는
경북선을 타고 상행한다. 상주,점촌,영주,그리고 묵호를 거쳐 동해를 지나 정동진까지...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두 아들이 듬직해 보인다.
잠결에 들려오는 옅은 안내방송이 영주역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는 듯하더니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빛에 눈을 뜨니 어둠을 밀어낸 창밖 풍경은 짙은
녹음과 깍아지는 절별들이 강원도의 아름다움으로 인사를 한다.
아침 5시30분, 하늘 구름속에 감춰진 산봉우리들은 아침안개의 포근함에
잠깨기를 거부하고 있다.
강촌의 새벽 안개속을 헤치며 천천히 레일위를 밀려가는 1692호 무궁화 열차는
여행객의 새벽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듯 조용한 밝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맞은편에 곤히 잠들고 있는 두 아들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또한번의 기회를 준다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이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인간의 지친 육신을 포근한 가슴으로 따뜻하게 감싸안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맑음에 온 몸을 맡기고 싶다.
꼭 잡은 두손으로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을 위로하고 칭찬하고 존경하며 숨어있는
중년의 사랑을 일으켜주고 싶다.
6시40분 정동진 도착했다.
5월 중순의 정동진 일출은 새벽5시18분이였다.
태양은 수평서을 한참은 벗어나 있었다. 정동진의 날씨는 어제의 예보와 다르게
맑고 청명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파도의 높이를 더하니, 하얀 거품을 품어내는 파도의
강렬함이 뿌연 물보라의 정취로 여행객을 반긴다.
'정동진역' 팻말과 거친파도를 헤치고 바다로 달려가는 듯한 범선의 모습에서
여기가 정동진역임에 분명했다.
우리는 해변을 걸으면서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질을 하였는데, 막내가 결국
파도에게 지고 말았다.
우리는 산위에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는 큰 배로 만들어진 곳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그곳은 한 사람의 의지와 사업가적 기지로 만들어진 개인의
작품이였다. 배위에서 바라보는 정동진의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끊없이 펼쳐져 있는 대해의 품이 후련했고, 끝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
정동진의 안락함이 여행객의 마음에 평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정갈하게 잘 가꾸어진 조각공원의 조경들과 어울어진 크루즈호텔의 정경이
이국의 정취를 잠깐 느끼게 한다.
적지않은 가족과 연인들이 토요일 아침의 아름다운 정동진 해안의 평온을
즐기고 있었다.
쌍동이는 해물칼국수, 나는 물회로 아침겸 점심을 맛있게 먹으니, 11시30분이다.
1시46분 열차까지는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지만, 약간은 지친 듯한 아이들이
더 이상의 여행에 흥미가 없다고 한다.
결국 역대합실과 역의 풍경속에서 2시간을 보내기로 삼자 합의한다.
돌아오는 열차는 밤열차가 아닌지라, 아이들이 창밖에 펼쳐지는 강원도의
풍경을 즐기려 한다.
한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큰 녀석은 깊은 잠의 참맛을 즐기고 있었다.
막내 역시도 눈을 감고 있었지만 호기심 많은 녀석이라, 태백선의 유일한
흥미인 지그제그로 가는 열차선인 그 지점에서 막내를 깨웠다.
뒤로가는 열차의 순간을 경험하며 신기해 하고 있는 막내였지만, 주식회사에
대한 궁금증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나도 눈이 피곤해 온다.
눈을 감는다.
이제 눈을 떳다. 기차는 어느새 점촌역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시간이 6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상주를 지나면서 7시가 되어간다. 저멀리 농가에서 솟아 오르는 저녁 연기가
지금은 참으로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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