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두번 울리는 암보험
이경은 기자 div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1) 입력 : 2009.05.15 03:17
암환자 생존율 높아지는데 완치 판정 받아도 보험사는 "돈 안된다" 사실상 가입 거절
주부 이모(55)씨는 지난 2001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한 대학병원에서 절제 수술을 받았다. 당시 입원비와 수술비 등을 합쳐서 약 1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그러나 변변한 보험 상품 하나 가입해 두지 않았던 탓에, 결국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치료비를 마련해야 했다.
최근 의사에게 완치 판정을 받은 이씨는 서둘러 보험부터 알아봤다.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완치 판정을 받은 터라 당연히 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 줄 알고 보험사 5곳에 문의했지만 보험사들은 모두 "암에 걸린 적이 있는 환자는 받을 수 없다"며 이씨를 외면했다. 이씨는 "암이 완치됐는데도 보험가입을 거절하는 건 보험사의 횡포"라며 흥분했다.
암 환자 50만명 시대에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암 환자의 생존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보험사들이 암 완치 환자들의 보험 가입을 거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암을 불치병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일부 암은 초기에 발견해 수술만 잘 받으면 정상인과 똑같이 평균 수명까지 살 수 있다. 국립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암 환자 2명 중 1명은 암을 치료한 뒤 정상인처럼 한국인 평균수명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암 치료력이 있으면 아무리 완치되었다고 해도 재발 위험이 큰 데다 사망 위험 또한 정상인에 비해 높다"며 암보험을 거절하고 있다.
◆'고지의무' 악용하는 보험사
보험사들은 공식적으로는 암 치료 경력이 있는 환자들의 질병보험 가입 자체를 막거나 특별히 차별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까다로운 조건을 세워 놓고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치료 기술이 발달해 보험금이 많이 나가 돈이 되기는커녕 부담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또 보험사들이 악용하는 것이 '고지(告知)의무'이다. 고지의무란 보험 가입을 희망하는 소비자가 최근 5년 내에 병원에서 수술·입원·검사 등을 받은 사실을 보험사에 알려야 할 의무다.
인천에 사는 김모(45)씨는 지난 94년 난소암에 걸려 난소절제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난 지 이미 15년이 지났고 재발의 징후도 전혀 보이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1년에 1~2회 정도는 병원에서 재발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김씨는 "고지의무에 걸려 탈락되지 않으려면 암이 완치된 이후에도 병원에 가서 암과 관련한 검사를 전혀 받지 않아야 한다"며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양세정 보험설계사는 "암 치료 후 추적관찰을 위해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사도 고지의무 사항에 해당된다"며 "보험사들은 이를 근거로 암 병력자들을 식별해 차별한다"고 말했다. 만약 소비자가 암 병력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나중에 보험 계약이 자동적으로 해지된다.
◆점점 사라지는 암보험
암 병력이 있는 환자들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조차도 암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암보험 상품을 취급하던 보험사들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판매를 중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암보험 판매를 중단하는 이유에 대해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초기에 암을 발견하거나 혹은 암 진단을 받고도 완치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 보험사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선진국선 완치환자도 환영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선 암 완치 환자의 보험 가입을 외면하지 않는다.
암 치료 경력이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에 비해 보험료를 다소 비싸게 내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입을 거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암 재발에 관한 정확한 통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보험료를 차등화해가며 가입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암 완치 환자에 대한 보험 상품 개발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보험사들이 적합한 보험상품을 개발하지 않고 암 완치 환자의 보험 가입 자체를 막는 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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